책 ‘탤런트 코드’의 초장에는 ‘클라리사’라는 가명의 여자 아이가 나온다. 이 평범한 재능을 가진 아이는 클라리넷을 연습하다 발견된 5분이라는 시간 덕분에 유명해졌다. 대부분의 시간은 무의미하게 버려졌지만, 딱 5분라는 마법의 시간동안 나머지 시간을 전부 합친 시간보다 더 많은 내용을 학습해낸 것이다. 책의 저자는 이 시간에 ‘심층학습’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저자는 심층학습의 느낌이 무엇인지, 어떻게 심층학습에 가까워질 수 있는지 전략을 전하려고 한다.
이런 글을 작성한 이유는 내가 클라리사 그 자체였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같은 곡을 아무 생각 없이 반복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냥 ‘시간이 누적되면 되겠지’정도로 치부했다. 드럼은 맨날 치던 곡들만 쳤다. 익숙하지 않은 곡을 칠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치는 것을 반복했다. 영어 공부도 마찬가지였다. 쉐도잉이 좋다길래 그냥 따라 읽었다. 그러다가 간혹 뭔가에 문득 꽂혀 제대로 된 연습을 하곤 했다. 그 피곤하지만 짧은 시간은 클라리사의 심층학습 5분에 대응되지 않을까. 지금까지 나는 학습에 ‘전략’이랄 것이 없었다. 더 늦기 전에 가성비 좋게 공부하고 싶었다(ref8).
빠르게 배우기 위해서는 일단 어려운 일을 막 해 보아야 한다. 당연히 바로 실패할 것이다. 이 실패의 경험은 썩 유쾌하지 않다. 기타 연습을 한답시고 내가 이미 할 줄 아는 곡만을 여러 번 다시 해 보면서 느껴지는 편안함이나, 영어에 익숙해지겠답시고 스마트폰 언어 설정을 영어로 두고 매일 똑같은 문구에 노출되는 익숙함과는 확실히 다른 맛일 것이다(ref1).
이 불쾌를 한두번 경험했다면 습관이 들기 전 곧바로 행동을 멈추고(ref2) 생각을 해야 한다. 어려운 일을 최대한 작은 단위로 쪼개서 흔히 하드스킬이라고 불리는 기본동작이나 소프트스킬이라고 불리는 패턴반응동작으로 분해해야 한다.
이때 여기서 말하는 하드스킬은 다소 일관되고 즉각적인 몸의 움직임(Always Being Consistent)과 관련이 있고, 소프트 스킬은 복잡한 인지작업이 수반되는 움직임(Recognize → Reaction)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으로 취업시장에서 말하는 하드스킬과 소프트스킬과는 결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ref3). 이 분류에 따르면 ‘축구’나 ‘재즈 드럼’뿐 아니라 ‘프로그래밍’이나 ‘커뮤니케이션 역량’같이 세상에서 유용한 스킬이라고 불리는 대부분의 것들은 하드스킬이 아니라, 소프트스킬과 하드 스킬의 아주 거대하고 복잡한 조합이다.
여기서 굳이 하드스킬과 소프트스킬을 나눈 이유는, 분명히 하드스킬은 아니지만 종종 더이상 분해하기 어려워 보이는 작업들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드럼을 잘 치기 위해 패드에 대고 일정한 힘과 박자로 드럼 스틱을 던지는 훈련은 하드스킬을 기르는 훈련임이 자명해 보인다. 하지만 ‘빠른 영어 듣기’라는 스킬을 훈련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빠른 속도로 영어를 반복적으로 들으며, 어휘를 알고 있음에도 귀로는 안 들리는 부분을 찾고, 해당 부분의 인토네이션에 대한 데이터를 끊임없이 넣으면서 패턴에 익숙하게 만드는 작업을 반복해야 한다. 만약 이것을 더 분해하겠답시고, 영어의 모든 발음체계를 익숙하게 한다거나, 그냥 영어를 틀어 두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 이것은 단순히 즉각적이고 일관된 몸의 움직임으로 분해되지 않았으므로 복잡한 인지 과정을 통으로 훈련해야 한다.
깊이 고민한 결과 거대한 스킬이 하드스킬과 소프트스킬의 조합으로 잘 분해되었다면 고립 훈련 전략과 각개격파할 순서와 세울 수 있다. 고립이란 헬스에서 말하는 근육의 고립과도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데, 예를 들어 정신없는 가운데 좁은 틈새를 빠르게 찾아내는 훈련을 하려면 축구 대신 풋살을 하고, 계기 비행이나 이착륙을 배우려면 비행기 조종 대신 시뮬레이터를 이용하고, 멜로디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면 악기를 내려놓고 입으로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고음을 뚫고 싶으면 노래에서 가사를 제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잘 고립되지 않는 스킬은 피드백 사이클이 길거나 무작위성이 강하다는 특징이 있다. ‘10년 뒤의 미래 예측하기 훈련’처럼 피드백 사이클이 길거나, ‘주식 패턴 익히기’처럼 무작위성이 강한 훈련이 안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ref5). 마지막으로 이들 스킬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선후관계를 정렬한 뒤, 앞서 설계한 훈련 방식에 따라 하나씩 정복하고, 익숙해진 스킬을 조합하여 더 복잡한 스킬을 배워라(ref4).
일단 어려운 일을 막 해 보고 실패를 했던 이유는, 커다란 그림 속에서 구성 스킬들의 연관성을 빠르게 파악하고 훈련 선후관계를 현명하게 세우기 위함이다. 이 과정은 쉬울 수도 있지만 굉장히 어렵기도 하다. 선생님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거대하고 복잡한 스킬을 아주 좋은 방법으로 분해하고 고립하여 훈련 순서를 정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도 할 수 있다. 선생님을 구하기도, 학습 컨텐츠를 구하기도 굉장히 쉬워진 세상이다. 유튜브에 ‘영어 공부법’이나 ‘드럼 독학’이라고만 검색해도 기상천외한 공부법이 쏟아진다. 이들을 받아들일 때 스킬의 어느 측면을 고립해서 훈련하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ref7). 창업에서 말하는 문제정의와 다를 것이 없다.
단 어느 방법을 택하든, 소리도 나지 않는 드럼 패드를 두들기는 것과 같은 기초적인 훈련을 지속할 때 굉장히 지루하고 막막해지기 쉽다. 아무리 효율적으로 학습한들 충분한 누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ref6).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소속감과 외부의 압박에서 오는 동기부여, 혹은 적절한 테스트를 통해 검증되는 작은 성취와 생리적 보상이라고 할 수 있다.
parse me : 언젠가 이 글에 쓰이면 좋을 것 같은 재료을 보관해 두는 영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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