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처음에 이 발표 대본을 준비하면서 ‘문제를 피해가는 방법뿐 아니라 문제의 본질을 정면으로 부숴야 한다’ 정도로 메시지를 전달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from1). 발표 초안 정도만 짜 놓고는, 내 삶에서 학교 다음으로 긴 시간을 투자한 프로젝트인데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그리고 무엇을 전달해야 자기자랑이 아니라 디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를 최근 한 2~3주에 걸쳐서 100시간정도 고민을 하는데 투자를 했어. 와닿지도 않는 본질 얘기를 하는 것은 본질이 아니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게 아니라 문제정의를 제대로 못한 것이 자율주행팀 삽질의 근본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어. 왜 그렇게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자율주행팀의 실수를 예로 들면서 설명을 해 줄게.

처음에 디어는 정밀지도를 쓰고 있었는데, 정밀지도는 사용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네비게이션을 쓰기로 했다고 얘기했어(from2). 그리고 나서 자율주행기술을 강화하는 데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고 했지?

우리가 열심히 자율주행 기술을 강화하고 있을 때 자율주행팀은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뭐라고 정의하고 있었을까? 그때 당시에는 우리가 풀어야 하는 문제에 대해서 정의된 문장 하나가 없었어. 일단 그게 제일 부끄러워. 근데 또 우리는 문제정의가 없었지만 목표는 있었어. 목표를 가지고 뭔가를 열심히 했어. 그때 자율주행팀의 목표가 뭐였냐면, “성수동 초행길 100m 를 자율주행할 수 있도록 만든다.” 였어. 다시 말하지만 이건 문제정의가 아니라 목표야.

<aside> ⚠️ 목표 : 성수동 초행길 100m 를 자율주행할 수 있도록 만든다.

</aside>

도대체 문제정의가 없는데 어떻게 목표가 나올 수 있었는지 모르겠어. 아니 너무나 상식적으로, 내가 풀고자 하는 어떤 문제가 있어야, 그걸로부터 목표가 나올 수 있는거 아니야(sup1)?

진짜 이상하게도 그때는, 문제정의에 대한 고민이 전혀 되지 않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인지를 전혀 하지 못했어. 다들 마음속에 뭐 그냥 자율주행 되면 좋잖아~ 정도의 생각만 있었던거야. 이게 명시적인 하나의 문장으로 딱 정의되어있지 않았다는 것 자체도 문제야. 나도 몰랐고, 준서도, 재석이형도 이게 필요한지 몰랐어.

그럼 다들 마음속에 그 두루뭉술하게 있었던 문제정의가 왜 문제가 될까? 모호한 문제정의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때 당시의 목표를 만들어낸 나랑 준서랑 재석이형 마음 속의 문제정의를 한번 추측을 해볼게. 목표로부터 강제로 문제정의를 끄집어내 보는거야.

그러니까, 헷갈리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자율주행 더 좋게 만들려고 열심히 열심히 노력했을 그때 당시에는 하나의 문장으로 된 문제정의랄 것이 없었는데, 도대체 우리가 어떤 문제를 풀어야겠다는 가지고 있었어야지 이런 목표를 만들 수 있었을까를 역으로 한번 상상해 보자는거야.

<aside> ⚠️ 문제정의 : 킥보드 자율주행기술을 만드려 하는데, 성수동 초행길 100m 를 못 가는게 문제다.

</aside>

문제정의는 “무엇무엇을 하는 데 무엇무엇이 문제다” 와 같은 꼴이 되어야 해. 그러니까, 당시 디어 자율주행팀의 문제정의는 “킥보드 자율주행기술을 만드려 하는데, 성수동 초행길 100m 를 못 가는게 문제다.” 가 되겠지? 이 문제정의는 말도 안되는 문제정의야.

일단 이 문장 자체가 누가 보더라도 엄청 이상하게 느껴져. 엄청 어색하잖아. 성수동 초행길을 돈다고 자율주행이 되지 않아. 성수동을 잘 돌아도 전국을 돌게 만들려면 결국 완전히 다른 기술을 사용해야 하거든.

문제정의가 모두의 마음 속에만 있었기 때문에 이 문제정의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할수도 없었어. 그리고 애초에 문제정의가 잘못됐기 때문에, 우리가 문제의식을 가지고 세워 놓은 “성수동 초행길을 100미터 가도록” 하는 목표를 달성한다고 하더라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거야. 그냥 목표를 달성하고 끝인거야.

방금 만들어낸 가상의 문제정의에 대해서 “왜?” 라는 질문을 한번 더 던지고, 이 문제정의를 낳은 문제정의를 하나 더 만들어 볼게. “자율주행기술을 만드는 데, 성수동 초행길 100m 도 못 가는 게 문제다.” 라는 문제정의에는 “다양한 가치를 만들려고 하는데, 킥보드 자율주행기술이 없는 게 문제다” 라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는거라고 할 수 있겠지?

<aside> ⚠️ 문제정의 : 다양한 가치를 만들려고 하는데, 킥보드 자율주행기술이 없는 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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