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이 죽고 여행을 떠난 플라톤은 테오도로스로부터 기하학을 배우기도 하고, 이집트에서 피타고라스 학파를 만나기도 한다. 서양철학의 시작점이라고 여겨지는 플라톤의 사상은 기하학이나 수학과 매우 강하게 결합되어 있다. 이 여행을 떠나 스승을 만나는, 꿈같은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집트 나일 강의 주기적 범람 이야기가 나온다. 나일 강이 자주 범람하다 보니 농토가 비옥하고 이것을 잘 예측하기 위해 천문학과 수학이 발전했다는 것. 그래서 거기에 수학을 좋아하는 피타고라스학파같은 학자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 나는 아래 질문들이 이어 떠올랐다.
황하 강도 주기적으로 범람해서 역사적으로 1천번 넘게 범람했다는 기록이 있고(ref3:황하강의 경우 농토가 비옥해지는 효과와는 달랐다고 한다. 그럼 굳이 강 옆에 딱 붙어서 농사할 이유가 없긴 하다), 우리 곁의 한강도 여름철에 비가 많이 왔다고만 하면 넘쳐서 잠수교를 담가 버린다. 그런데 왜 굳이 그 수많은 강들 중. 나일강이 그렇게 중요할까?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었던 생각은 대개 ‘뭐, 발전했을수도 있겠으나, 이렇게 자세히 기록이 남아있는 것이 이집트밖에 없다’(ref1:똑같은 의문을 가진 외국인의 reddit) 또는 ‘단순히 유럽중심주의일 뿐이다’ 같은 견해들밖에 없었다. 그래서 위 질문들에 설득력 있는 답을 찾고자 할. 때 강의 범람으로 바라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뭐 생존자의 기록이 역사라는 관점이나 유럽중심주의의 산물이라는 관점 모두 일리는 있지만, 유현준 교수님의 주장은 ‘다중 기후대에 걸쳐 남북으로 길게 흐르는 강’이다. 남북으로 길게 흐르는 강을 끼고 있는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은 황하 문명에 비해 천년 이상 빨랐다. 이런 형태의 강은 두 가지 측면에서 유리한데, 첫 번째 이유는 ‘균’이다. 메소포타미아-이집트 문명이 다른 문명들에 비해 건조기후대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여 살아도 균이 번식하기 어려워 더 빠른 발전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ref2). 하지만 이 첫 번째 이유는 여러 논리적 문제가 있다. 반대론자들은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이집트 지역이 오늘날과 달리 당시에는 겨울에 고온다습했으며, 홍수는 수인성 질병을 옮기는 굉장히 강력한 수단이기에 설사 건조하다고 하더라도 기후로 통제가능한 수준이 아님을 지적한다(ref8). 두 번째 이유는 이집트의 경우 상류와 달리 하류에만 홍수가 났기 때문에 형이상학적 사고를 할 단서가 있었던 반면 다른 강은 그러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며(ref9), 북미와 남미 문명이 늦은 이유는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인용하며 남북으로 긴 대륙의 형태에서 찾는다. 두 번째 이유도 굉장히 흥미롭지만 학술적 근거를 찾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이 설명에 오개념이 있냐 없냐는 지금 크게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어떤 문명이 먼저 발생했는지와는 상관없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동서양의 이데올로기를 만들었다고 여겨지는 고대 사상가들과 학자들은 기원전 500년 무렵이라는 비슷한 타이밍에 등장했다(ref4). 문명의 발생이 1천년 빠르다고 해서 핵심 이데올로기가 1천년 빨랐던 것은 아니다. 처음 던졌던 두 개의 질문에 대해 충분히 논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답은 ‘문화’다. 더 쉽게 게임에 비유해 말하면 테크트리나 메타가 되겠다. RPG로 따지면 각 지역에서 1차 전직은 비슷한 타이밍에 했지만, 서양은 왕귀형이었고 중국과 황하 문명은 초반 러쉬형이었던 것이다.
그림(ref6): 중국의 기술력은 명나라 시절까지 유럽보다 앞서 나갔다.
1400년대 유럽은 이정도 항해를 할 수 있는 기술이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동양에는 이과적 사고 자체의 발전이 없었냐 한다면 그것도 아니다. 명나라 시절 중국의 공학적 역량은 유럽을 크게 앞섰다고 할 정도니까, 하지만 차이는 여기서 벌어졌다. 지나친 일반화의 위험을 가지고 있지만 초거시적 관점에서 감히 범주화를 해 보도록 하겠다. 동양이 어떤 자연현상을 대하는 기본적인 메타는 결합과 관계를 기반으로 현상을 파악하고 포용해서 해석하는 일이었다. 그 결과 응용과학과 공학이 발전할 수 있었다. 반면 서양이 자연현상을 대하는 기본적인 메타는 분해하고 단 하나의 궁극의 원리를 발견해 내는 일이었다. 그 결과 자연과학이 발전했다. 뭐가 더 좋다 나쁘다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남아 있는 역사는 각각의 문화권의 메타를 투영한다. 분명히 동양에도, 명나라에도, 조선에도 이집트의 피타고라스 학파같은 조직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앞서 던졌던 두 개의 질문 중 두 번째 질문을 건전하게 바꿔 보면 ‘왜 동양의 피타고라스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찾아볼 수 없는가?’ 가 된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강수량의 차이가 만든 벼농사, 밀농사 문화의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장 설득력있다. 이와 관련해서도 좋은 글을 인용해 보도록 하겠다.
유현준 교수님은 책 <공간이 만든 공간>에서 서양과 동양의 문화에 나타나는 사고구조를 ‘분해’와 ‘관계’ 또는 ‘개인’과 ‘집단’이라고 추상화한다. 서양은 어떤 현상을 관찰할 때 오늘날 우리가 MECE라고 부르는 방법론대로 더 본질적인 것으로 분해해 보려고 하는 한편, 동양은 어떤 현상의 관계와 조화를 중요하게 바라본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배워야 하는 것은 서양이 더 좋고 동양이 바보같다가 아니다. 송용진 교수님이 ‘사피엔스 스튜디오’ 채널에서 언급하듯 우리나라가 수학과 순수과학의 발전을 위해 리소스를 투자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지금이 1400년이었다면 명나라에 유학한 유럽의 젊은이는 공학의 중요성을 외쳤을테다. AI가 눈부시게 발전하는 오늘날, 다시 동양적 사고의 시대가 올지 누가 알겠는가.
아무튼,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다음이 아닐까. 기후의 차이가 농작물의 차이를 만들었고, 농작물의 차이가 노동방식의 차이를 만들었고, 이들이 만든 문화가 어떤 지식을 끊어내고 어떤 지식을 살릴지를 자연스럽게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집트에서 플라톤이 피타고라스 학파를 만난 것은 우연이지만, 그들이 만든 이데올로기가 서양세계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의 밀밭이라는 환경이 만든 문화 때문이다.
2024년 오늘날, 이제 두 거대한 문화권 사이의 거리는 50년도 채 되지 않은 IT라는 인프라와 10년도 되지 않는 AI를 통해 물리적 거리와 언어적 장벽을 허물고 미친듯이 가까워지고 있다. 거리에 나가면 심심찮게 외국인이 보이고, 한류가 유럽을 휘젓는 오늘날, 문명이 발생하고서부터 2000년까지 축적된 동서양의 사고와 각각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고자 할 때, 우리는 이러한 초거대 프레임을 이용해볼 수 있겠다.
parse me : 언젠가 이 글에 쓰이면 좋을 것 같은 재료을 보관해 두는 영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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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 과거의 어떤 원자적 생각이 이 생각을 만들었는지 연결하고 설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