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프로그래밍이라는 주제에 대해 그냥 공부를 해보고 싶어서 공부하는 것과, 프로그래밍을 통해 가치를 만드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최근 나는 둘 사이에는 ‘그냥 하는 일’ 과 ‘문제를 올바르게 정의하는 일’ 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고 정리했다.

나는 디어에서의 경험을 통해 거대한 삽질이 잘못된 문제정의 때문에 나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from1). 동시에 사람의 인생도 목표정의를 제대로 않고 그냥 지금 당장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경험과 행동만 해나간다면 환경에 의존적인 사람이 되어버릴지 모른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from2). 그런 공포감에서 나는 문제정의와 정의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구분해야 한다는 디자인 씽킹이라는 아이디어(from14)를 기반으로 인생 프레임워크를 설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from3).

몰입에 대한 세간의 두 가지 시선

수많은 자료들이 ‘몰입’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설파하고 있다. 무엇인가에 무아지경 몰입할 수 있을 때야말로 내 안의 잠재력을 모두 끌어낼 수 있으며,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개인적으로 몰입이 빠른 성장에 큰 도움을 준다고 느끼기도 했다(from7:자율주행팀에서 배운 점).

하지만 반대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빠져나와 환기를 하는 일들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입장도 존재한다. 자신이 문제를 올바르게 정의하고 있는지를 환기하는 ‘메타인지’ 가 필요하다는 생각(참고1:몰입에 대한 준서의 생각), 충분한 휴식 혹은 뇌를 쉬어주는 활동이나 취미 등을 통해 뇌를 자극하거나 쉬어 주어야 한다는 주장(from6), 심지어는 현재의 분야 혹은 맥락에서 아예 벗어나 새로운 컨텍스트와 연결해 보라는 ‘탈맥락화’ 같은 주장이 있다. 흔히 말하는 ‘몰입주의자’ 들이 들으면 깜짝 놀라서 반대할 만한 주장도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다. 두 입장이 완전히 상충된다고 느껴지면서도 두 입장 모두에 일리가 있기 때문이다. 몰입과 분산이라는 주제는 스페셜리스트와 제너럴리스트 중 어떤 삶을 살아가는 것이 유리한지에 대한 논의(from8), 창의적 생각을 하는 일에 몰입과 분산 중 어떤 것이 더 유리한지로도 이어진다.

내 삶의 커다란 가치 중 하나는 다재다능성*(Poly Math (Da Vinci))*(from9)이었다. 하지만 다재다능성이라는 것은 허상이고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는 주장도, 요즘 시대에는 오히려 다재다능한 사람이 다시 주목받을 것이라는 의견도 많았다. 하나에 몰입해야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주장도, 하나만 해서는 창의력이 나올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각각의 논거는 모두 풍부하다.

나는 창의적이고 창조하는 삶을 살고 싶기 때문에, 특정 태도 하나를 딱 골라 지켜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 주제에 대해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어느 한 쪽에 가중치를 매길 수 없었다. “인생을 윤택하게 살려면, 몰입을 해야 한다. 그런데, 또 몰입을 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실제로 이것 때문에 엄청나게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from4,5,13).

내가 추구하는 삶을 지독하게 살고 싶은 나같은 사람에게 ‘제너럴과 스페셜함 둘 다 중요하니 둘 사이에서 적당히 밸런스를 찾으라’ 혹은 ‘뭘 그렇게 인생을 복잡하게 사느냐’ 같은 말만큼 무책임한 말도 없을 것이다. 결국 시간이 갈수록 남들이 하나의 지식을 배울 시간에 세네개 지식을 빠르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강박으로 이어졌다(from10).

두 가지 시선의 합치

정의되지 않은 스트레스를 겪은 지 2년이 지났다. 나는 어떤 것이 몰입에 대한 적절한 기준인지 정말 오랜 시간 고민한 결과, 둘은 상충되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아주 번뜩이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분명히 사람은 몰입할 때 높은 생산성을 보인다. 하지만 흔히 말하는 몰입도 항상 유지될 수 없다. 몰입이 깨지는 순간은 필연적으로 온다. 대표적으로 ‘80:20 법칙’ 은 하나의 몰입 상태를 지속하는 경우 생산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주장 중 하나이다. 하나의 주제에 대한 집중은 사람의 시야를 크게 좁혀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참고14).

나는 환경을 중요시하는 사람이지만(from12), 환경적 요인도 때때로는 생산성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가령 다음날 중간고사 시험이 있어도 그 과목을 하기 싫으면 꾸역꾸역 하면서도 뇌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아무리 절박한 환경에 있어도 뇌가 피로하여 하기 싫은 것을 하게 만들기 어렵다는 것은 이미 우리에게 경험을 통해 알려져 있다.

분명히 효율적인 전환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이럴 때가 바로 하고 있는 일을 바꿀 순간이다. 하지만 그 바뀌는 일은 절대로 문제정의를 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새롭게 하게 되는 일은 이미 문제가 정의되어 있는 ‘그냥 하는 일’ 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스타트업을 하며 고객의 문제를 올바르게 정의하기 위해 몰두하던 사람이, 단순히 다른 스타트업에서 고객의 문제를 정의하기 위해 몰두해서는 안 된다. 혹은 학계에서 의견이 분분한 토론 주제를 들여다보며 문제의 골자를 정의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전환되는 일은, 평소 궁금했던 생물학 공부를 하고, 그냥, 게임을 하고, 그냥, 유튜브를 보거나, 악기를 하는 것이어야 한다.

업무 전환과 생산성 사이에는 분명히 유의미한 긍정적 상관관계가 있다(sup1). 이미 역사 속에서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취미에도 엄청난 열정을 불태웠다는 사실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다른 분야의 맥락에서 벗어나*(탈맥락화)* 아이디어를 나의 문제에 차용하거나 우연한 연결이 엄청난 힘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견도 전혀 빈말이 아니다(sup2). 예를 들어 인간의 실존에 대한 철학적 정의와, 자의식에 대한 심리학 정의를 엮어보지 않았더라면 아래와 같이 ‘인공지능과 자의식’ 이라는 주제에 대한 색다른 의견을 절대 창조해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아래는 전형적인 발산형 사고를 하는 친구의 생각 부스러기다.

철학자 사르트르에 따르면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고 한다. 사람은 실존하고 나서 본질을 생각한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애초에 목적을(본질) 부여받고 세상에 태어난다. 자의식이라는 것은 심리학에서 정의된 용어이다. … 실존이 본질에 앞서는 것이 인간인데 … 목적을 타고나는 인공지능은 자의식을 가진 존재일 수 없다. 자의식을 찾도록 명령받은 인공지능 또한 목적을 부여받았다는 점에서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본질을 찾도록 명령받지 않았다.(참고4)

문제정의에 몰입하라

문제정의와 목표수립이라는 일이 무엇인가. 문제정의는 창의적 문제해결의 뼈대로 여겨지는 디자인 씽킹 프레임워크(from14)의 두 번째 핵심 과정이다. 문제정의를 하는 일에 몰입해본 사람들은, 문제정의를 하는 일이 엄청난 피로감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문제정의를 하는 뇌에 피로감이 생기면 문제정의 자체를 하기가 싫어지거나 한 번 정의된 문제에 의심을 하기가 싫어지게 된다. 문제정의를 섣부르게 하려는 욕구를 ‘인지적 종결 욕구’(NFCC, The need for cognitive closure) 라고 부른다(from15). 이러한 상태는 어마어마한 삽질을 할 리스크를 안아 버린다는 문제가 있다(참고2). 문제정의를 올바르게 하는 일은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자(from11), 0에서 1을 만드는 일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디어의 공동창업자 명균이형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것이 몰입인데, 너가 얘기했던 것처럼 삽질하고 있을 때 알아차리기 위함이야. 진짜 대충 생각해서는 맞는 것 같거든. 그냥 그 길로 가도 될것같고, 왠지 별 문제 안 생기니까 그냥 왠지 가면 될 것 같으니까 일이 되니까... 액션을 못하는 사람도 엄청 많지. 그런데 일단 갈아 넣으면 뭔가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어디에 갈아넣을지 정하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참고2)

그냥 하는 일에 몰입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