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만한 문제와 가치를 찾겠다는 이상한 포부로 바이크를 타고 전국을 일주하며(from5) 느꼈던 건 나는 무너져 가는 을지로의 힙한 카페는 잘 가면서, 섬진강 강변의 진짜로 무너져 내려가는 가게에서 은어조림 파시는 노부부는 무서워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들이 어떤 운명 아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인지, 어떤 것을 추구하는지 알 수는 없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그 가게에 들어가기가, 그 가게에 들어가서 그 사람들과 대화하기가 왜인지 모르게 두려웠다. 운명이 너무 다른 환경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질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from1). 하지만 그것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자칫 폭력일지 모른다(참고1).
고속도로를 탈 수 없는 바이크로 지방을 돌면 정말 작은 규모의 마을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고속도로나 일반국도와 달리 지방도는 아주 작은 마을 한가운데를 꿰뚫고 지나간다. 멀끔히 정돈된 정원과 깨끗한 차고, 후면주차되어 있는 자동차 한 대, 조금씩이나마 도시 사람들이 유입되는 마을은 딱 알아볼 수 있게 된다. 귀농의 상징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마을이 훨씬 많았다. 한복을 입고 정자에 앉아 수염을 만지며 부채를 부치시는 할아버지가 바이크를 타고 쌩 지나가던 나를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계시던 그 이름모를 마을, 그리고 그 마을을 거의 지나쳐 나갈 쯤 마을과 관련된 설명을 적혀 놓은듯한 비석이 하나 놓여져 있던 그 마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찾아볼 수 없는 동네가 정말 수두룩하게 많다는 것을 느꼈다. 이 마을 사람들의 나이가 평균 70이라고 한다면, 최소 30년 안에 이 마을은 그냥 사라지는 것이다. 이미 익숙해진 듯, 지역사회가 소멸되어 가는 현상을 그냥 무덤덤하게 받아넘길 사람들까.
지역 소멸을 바라지 않고 어떤 지역을 관광지로 만들려는 시도도 눈에 들어왔다. 경상북도에서 강원도로 넘어가는 길에 김삿갓면이라는 곳이 있었다. 술게임에서나 듣던 김삿갓이라는 이름을 동네 핵심 컨셉으로 잡고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하나의 ‘면’ 에도 여러 마을이 들어 있지 않은가. 농산품을 컨셉으로 잡은 동네도 있었다. 마을을 지날때마다 간판이 하나씩 붙어 있는데, 어디는 토마토 마을이고 어디는 고추 마을이다. 토마토 마을 입구에는 토마토 모형이 붙어 있고 고추 마을에는 고추 모형이 크게 붙어 있다. 누가 알아주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시도를 한다는 노력 자체가 귀엽고 하찮게 느껴진다.
이런저런 마을들을 지나던 중, 갑자기 포도 모형이 주렁주렁 달린 어서오세요 간판이 나타나더니, 다음 특산물 마을을 마주치기 전에 ‘예밀2리’ 라는 마을 속 마을 입구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와인과 관련된 간판이었다. 우리 포도로 만드는 와인 이런 느낌. 이런 작은 포도밭에서 와인을 어떻게 만든다는 거야, 이런 시골에 저런 간판을 누가 본다고 세워 둔거야 싶어서 홀리듯 머리를 돌려 예밀2리에 들어가보게 되었다.
산과 산 사이를 골짜기라고 한다. 예밀 2리는 골짜기에 만들어진 그냥 여느 흔한 강원도의 시골 마을이었다. 간판부터 인가가 모여 있는 곳까지 들어가는 거리는 1km가 족히 넘어 보였다. 그런데 들어가는 길이 여느 시골 마을과는 달리 꽤 잘 정돈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꽤나 깔끔하게 닦인 적당한 너비의 도로 양옆으론 채 2m 가 안 되는 나무 묘목들이 나란히 심겨져 있었고, 묘목 너머 펼쳐진 넓지 않은 골짜기 평지에는 포도나무가 낮게 자라고 있었다. 골짜기 중앙에는 꽤 썰렁한 그 민가가 나타났는데, 한가운데 갓 지어져 페인트 냄새가 풀풀 나는 동 사무소가 있었다. 그리고 그 바로 옆에는 사무실 건물이 하나 있었다. 세명 정도의 흔적이 보이는 그 건물에는 ‘예밀 와인’ 을 팔고 있었다. 나를 맞아 주신 신분 불명의 한 아저씨께서는 와인을 살 수 있다고 하셨고, 간략한 와인 자랑과 설명을 해 주셨다. 나는 궁금증이 들어 선생님께서 여기 담당하시고 꾸미고 계시는 건가 물어 보았다. 마을로 들어오는 길과 나란히 심겨진 묘목은 10년 뒤를 바라보고 이장님이 꾸미고 계신 것이며, 동 사무소의 빈 공간에는 간단한 프랑스 요리를 먹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 것이라고 했고, 본인은 와이너리만 담당하고 있다고 있다고 했다. 몇 년 뒤에는 와이너리를 크게 만들어서 관광객들도 투어를 할 수 있게 만들거고, 시음 등 행사들도 크게 열 것이라고 했다. 그러며, 자신도 바이크를 탔고, 바이크 타고 전국 일주를 하는 것이 꿈이었다는 이야기를 흘려 주셨다.
지역소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러한 현상들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충분히 많다. <도시, 다시 기회를 말하다>(참고3) 혹은 <시골의 진화>(참고4) 같은 책들에서는 지역 격차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고 이를 슬기롭게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서 제시한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문제를 올바르게 정의하긴 한건지 궁금하다(from3,4).
두 명이 두 명을 낳아 마을에서 떠나지 못하게 만드는 법을 만든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까? 경제적 지원을 주거나 철도같은 공공재를 깔아 준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까? 그냥 관광지로 개발하거나, 브랜딩을 해서 모금을 받는 것이 바람직할까? 이것은 무엇 하나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닐 것 같다.
인문적, 사회적, 기술적 노력이 모두 융합되어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내러티브를 가지고 살아가고 싶고(from2), 다학제적 접근을 추구하고 싶은 내가 해결하기 좋은 문제가 아닐까?
우선 지역사회가 붕괴되는 것이 정말 나쁜 것인가? 지역격차라는 것이 진짜로 문제가 맞긴 한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막상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지역 소멸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할까?
사람들이 도시에서 살려고 하는 것은 도시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구는 사람들이 도시에 몰려 사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여긴다. 문제는 이동이다. 자원과 물건은 바다라는 공간을 통해 이동한다. 공장 인프라, 농장 인프라, 관광 인프라에 의존적인 사람들은 그것이 존재하는 공간을 떠나가기 어렵다. 이 사람들은 어찌되었든 지역에 남아야 한다. 빠르게 이동할 수 없어서 생기는 문제라고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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