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적인 가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7:37, 세계는 그냥 그대로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세계는 그냥 세계인 것이고, 그 세계를 상대하는 우리 인간이, 인간의 윤리에 근거한 이치를 적용하여 이해하고자 할 때 그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뜻에서 부조리하다는 것이다. … 21:09, 다시말해 부조리는 이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세계 사이에 있는 것이다. 세계는 부조리하지 않는다. 카뮈는 이것이 불편한 감정이지만 알아야 하는 감정이라고 본다.

궁극적인 가치라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빈곤층을 돕기 위해 매달 정기적으로 돈을 내는 사람이 있다고 해 보자. 하지만 의심을 해 보자. 이 사람이 하는 행위가 정말 바람직할까? 빈곤 포르노라는 말이 있다. 어떤 한편에서는, 사람이 살면 안 되는 곳에 사는 것 자체가 잘못이며, 그 사람들이 그 곳을 떠나든 사라지는 것이 종 전체에 득이 되는 방향이라고 주장하며, 그 사람은 빈곤 포르노에 중독되었을 뿐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참고1,2:우생학적 사고). 어떤 것이 정답인가. 굉장히 가혹해 보일지라도 궁극적인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양한 가치들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일은 앞으로 70년을 살아갈 나의 몫이다.

사람의 가치는 시간축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참고5:철학교수, 참고7,8:맹윤호 멘토님의 의견). 일례로 우생학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자. 당장 10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인간의 힘으로 도태되는 유전자의 싹을 자르고 우월한 인간들을 다음 세대에 넘기겠다는 생각인 우생학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시피했다(from3). 즉, 사람이 살면 안 되는 곳에 사는 것 자체가 잘못이며, 그 사람들이 그 곳을 떠나든 사라지는 것이 종 전체에 득이 되는 방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아프리카 빈곤층을 돕기 위해 매달 정기적으로 돈을 내는 것이 오히려 도덕적인 행위라고 여겨진다. 신기하지 않은가! 알고보면 세상에서 유일하고 거창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나의 가치도 결국 오늘날 사회(참고12:행복을 연구하는 서은국 교수님의 의견)의 이데올로기 및 그러한 사회의 부분집합인 주변 환경(참고10,11:재호형의 의견, sup4:홉스가 민주주의에 반대했던 사회적 배경)에 의해 영향을 크게 받아 만들어진 부산물일 뿐이다.

극단주의자가 되는 경우 내 행복 측면에서 손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노스보다는 일론 머스크가 낫다.

물론 진리와 진실을 구분하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일은 정말 중요하지만(from2), 가치라는 것을 고민할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내가 현재를 살아가는 동물임을 인지해야 할지도 모른다. 나라는 존재가 살아있는 동안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를 세속적으로 따져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행복하게 사는 것을 이루고 싶어한다. 그런데 나와 함께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면 행복한 삶이 아닐 것이다(to3). 사람의 유전자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자연의 섭리가 인코딩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치에 절대성이 없다지만 공산주의 혹은 무정부주의같은 극단주의자가 되어서는 안되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미래에는 공산주의 혹은 무정부주의가 당연해진 사회가 있을지도 모름에도, 단지 오늘날 사회 구성원이 당연하게 추구하는 가치 때문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기 어렵기 때문이다*(자극적인 단어들에 발작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우생학을 한번 더 떠올려 보자. 나는 과학적 사고 이외의 그 어떠한 정치사회적 사상도 추구하지 않는다)*. 사회적 가치에만 모든 리소스를 몰빵하는 사람(sup1)이나, 재화에 몰빵하는 사람, 성관계에 집착하는 사람(sup2)도 이와 비슷한 마찰을 빚는다(참고3,4,6:맹윤호 멘토님의 의견).

나는 대의를 위해 우주 전체와 싸우고 싶은 사람인가

332p, 나는 환경보호 운동의 본질이 자연을 보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모든 환경 운동가는 일부 중(예컨대 폴리오바이러스)의 멸중을 기뻐하는 한편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화를 구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자의적인 구분이다. 폴리오바이러스와 야생화는 어느 것이 다른 것보다 더 좋거나 나쁘지 않다. 우리는 무엇이 우리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는지를 바탕으로 무엇을 보호할지 선택한다.

가치에 대한 물음의 궁극적인 해답은 철학에서도 찾을 수 없다(from1). 정치나 이념의 역사에서도 찾을 수 없다(sup4). 가치는 오히려 오늘을 살아가는 나를 고려하여 수립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할지도 모른다. 우주 전체의 생존을 위해 핑거스냅 하나로 생명체의 절반을 삭제하겠다는 대의를 가지고 우주 전체를 적으로 두고 전쟁을 벌이는 <어벤저스>의 타노스처럼 살아가는 것보다, 인류 절반은 적으로 두되 인류의 절반은 팬으로 두고 사랑과 존경도 받으면서 살아가는 일론 머스크처럼 살아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곤 한다.


편애가 아니라 겸애해야 한다는 생각이 과연 진화적으로 타당한 생각일까? (자연을 거스르는 생각이 아닐까)

극단주의가 좋은 타이밍이 있을까? 극단주의가 가치를 추구하기 어렵다고 했으나 거대한 변화는 극단주의자들이 만들었다.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스티브 잡스가 추구한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일반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확연히 다른 무언가였을까? 만약 그렇다면, 잡스는 그 가치를 어떻게 생각해낼 수 있었을까?


parse me

  1. ‘사상적으로 남들과 다르게 월등함’ 을 주제로 살아가고 싶다면,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가치의 경계에서 줄을 타며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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