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니체를 삶은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는 카뮈가 비판했다. 우주적 관점에서 삶의 의미는 작고 하찮을 뿐이다(참고1). 맹목적 믿음인 종교, 그 어떤 물음에도 완벽한 정답을 내려놓지 못하는 인간계의 철학의 한계다(from1).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런 우주에 떨어져 있는 인간의 삶은 결코 추하지 않다.


parse me : 언젠가 이 글에 쓰이면 좋을 것 같은 재료들.

  1. 카뮈의 부조리
  2. 5:30, 두 번째 문제는, 개인의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이다. 오늘날의 과학은 모든 인간을 규정하기를 다른 생명체와 같은, 생물학적인 존재로 이해한다. 그렇게 되면 인간의 삶의 의미와 목적이 생존밖에 없을 것이다. … 하지만 인간은 목적성을 가지고 살아야 더욱 건전하고 유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캔트웰 스미스는 개인의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초월적 실체에 대해서 개인이 역동적으로 응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이 초월적 실체에 대해 역동적으로 응답하는 것이 종교라고 본다.

from : 과거의 어떤 생각이 이 생각을 만들었는가?

  1. 3__1.2.1. title: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종교를 선택하기 싫다고 철학을 선택하지는 마라. 철학이 궁극적인 가치에 정답을 내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공부하라.

supplementary : 어떤 새로운 생각이 이 문서에 작성된 생각을 뒷받침하는가?

  1. None

opposite : 어떤 새로운 생각이 이 문서에 작성된 생각과 대조되는가?

  1. None

to : 이 문서에 작성된 생각이 어떤 생각으로 발전되고 이어지는가?

  1. a7.3. title: 우주적 관점에서 삶은 신비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