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이 페이지의 목적

우선 이 페이지에 담길 내용의 목적을 명확히 하고자 합니다.

나 자신을 소개하는 글, (취업을 고려한다면) 내 경력과 경험을 어필하는 글, 후배들에게 영감이 될 수 있는 나의 소개… 이 모든 목적들이 혼합이 되어 포트폴리오도 아니고, 경력설명서도 아니고, 일기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글이던 시간이 꽤 길었습니다. 자기소개는 이렇게 해야 한다더라, 경력은 저렇게 어필해야 한다더라를 접할 때마다 자잘하게 수정하다 보니 누더기가 된 것입니다.

이제 이 글은 제가 무슨 일을 어떤 생각으로 했는지, 무엇을 배웠는지, 전후 행보에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았는지에 대해 소상히 설명하는 일만을 도맡습니다. 여기서 일이란, 프로젝트, 참여했던 단체, 출판물 등 이 사회에서 1인분을 하며 살아가기 위한 흔적이라면 그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저는 그냥 슥 해버렸을 것 같은 일 속에 어떤 고민이 있었고, 어떻게 망했고, 어떤 실수들을 했는지, 치부를 더 잘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성해보려고 합니다.

데이터상 방문자들이 제 블로그에서 가장 오래 체류하는 페이지이긴 하지만, 이 페이지의 제1독자가 저 자신임을 명확히 합니다. 종종 심신이 지칠 때면 모종의 조바심이 발동해 내가 걸어온 길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곤 합니다.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저 자신도 매우 조바심이 나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Connecting the dots’ 라는 말이 있잖아요. 내가 업을 찾기 위해 걸어온 길이 절대 아무런 연관성이 없지 않음을 발견할 때 다시 조금이나마 힘을 얻곤 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전혀 궁금해하지 않을 것 같아서 굳이 쓰지 않았지만 제 삶에 영향을 은은하게 주고 있는 것들도 하나씩 넣으려고 합니다. 새로운 내용이 많이 추가될수록 저 스스로도 ‘나의 경험이 알차게 쓰이는구나!’ 작은 위안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제 이야기가 길게 펼쳐진 이 페이지의 내용을 읽으시는 제2독자 여러분도 ‘아 이 사람은 이때 이런 고민을 했고, 그래서 이런 일을 했구나! 이런 일로부터 영감을 받았구나!’를 이해할 수 있다면 이 글은 포트폴리오, 경력설명서, 일기 그 무엇도 아니더라도 제 할일을 과분히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거의 과거에서 현재로 흐르게 작성되었습니다. 주요경험, 프로젝트, 단체, 수상, 교육 … 이런 식의 구분도 모두 폐기했습니다. 제 삶은 그렇게 깔끔하게 돌아가는 것 같지 않아서요. 중간중간 뭔가 근사하게만 작성된 내용이 보인다면 아직 치우지 못한 과거의 흔적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아무래도 이렇게 바꾸는 작업이 조금 걸릴 것 같아요.

토글로 접어넣은 것들은 상대적으로 잔가지라고 생각해도 됩니다.

1. 이야기

개발행사를 1학년 턱밑에 들이미는 커뮤니티 만들기

커뮤니티 설립

19.03

대학교에 들어온 저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이 컸습니다. 이제 와서 더 솔직해지면, ‘주변 사람들이 훌륭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주변 친구들은 그냥 평범해 보였습니다. 열심히 학교 수업을 듣고, 술 먹고 게임 하고, 함께하면 행복한, 착한 친구들이었습니다. 정말 위대한 생각을 하고, 몇년 뒤 표현으로 ‘머리를 깨’ 주는 사람이 없다고 느껴졌습니다. 맨날 구글에 ‘세종대학교 출신 CEO’, ‘세종대학교 출신 유명인’ 같은 것을 검색하며 얼마나 많은지 세어 보고 다른 학교와 비교해 보곤 했습니다. 너무 즐거운 시기였음에도 동시에 불안감이 떨쳐지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허심탄회히 털어놓으면 대학생 초기 동력 90%는 여기서 비롯됐습니다.

1~2학년 때 각종 행사들에 참여하며 얻은 목걸이만 50개정도 지금도 장롱 구석에 쌓여 있을 정도로 개발자 컨퍼런스와 전시회, 강연, 대회를 닥치는 대로 전전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서 무력감에 빠지기도 했고, ‘듣다 보면 나아지겠지’라는 희망 회로를 돌리기도 했습니다. 이때 LLM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주 조금씩 조금씩 들리는 것이 많아짐을 느낄 땐 시야가 조금 넓어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런 행사의 존재를 알아내는 일부터 저학년에게는 너무 멀게 느껴졌습니다. 이 커뮤니티는 처음부터 다른 학생들을 돕겠다는 거창한 뜻에서 시작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 좋은 기회를 제 턱밑까지 가져다주었으면 했고, 그런 사람이 없다면 제가 먼저 해보자는 마음에 가까웠습니다.

당시에도 공모전과 개발행사를 모아두는 홈페이지는 해커톤에서 흔히 보이던 아이디어였습니다. 하지만 정보가 어딘가에 잘 정리되어 있는 것과, 그 정보가 필요한 순간 내 근처에 도착해 실제로 가볼 만한 일처럼 느껴지는 것은 달랐습니다. 그래서 홈페이지를 만들지 않고 학생들이 이미 매일 쓰던 카카오톡에 오픈채팅방을 만들었습니다. 신입생이 들어오는 시기마다 교내 커뮤니티에 방을 알렸고, 초반에는 사람들이 떠나지 않도록 제가 직접 행사들을 찾아 계속 공유했습니다.

그 수작업이 생각보다 잘 통했습니다. 저와 비슷한 갈증을 느꼈던 몇몇 선배들이 먼저 정보를 보태기 시작했고, 저학년 때 들어온 사람들이 고학년이 되어 다시 후배들에게 기회를 건넸습니다. 큰 홍보 없이도 방은 조금씩 커져 2022년 3월에는 약 500명이 모였습니다. 제가 정보를 공급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서로 먼저 질문하고 답하며 정보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한 사람이 하던 일을 공동체가 이어받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성공에는 운이 많이 따랐습니다. 저는 ‘정보가 없다’는 문제를 푼 것이 아니라 ‘정보가 나를 깨우지 않는다’는 문제를 우연히 더 정확하게 건드렸습니다. 저 자신이 첫 사용자였고,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정보를 직접 찾아 건네는 제품의 역할도 했습니다. 나중에야 이런 방식을 컨시어지 MVP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무언가를 잘 만들어두는 것보다 먼저 누군가의 문제 안으로 들어가 수작업으로라도 해결해보는 일이 강력할 수 있다는 것을 이때 배웠습니다.

이 일은 이후 제가 제품과 커뮤니티를 보는 방식에 오래 남았습니다. 잘 만든 웹 페이지보다 대충 만든 카톡방 하나가 더 지속가능할 수 있다는 것, 처음에는 사람이 직접 제품이 되어도 된다는 것, 그리고 정보가 흐르는 것과 지식으로 남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학년도 가치를 만들 수 있을까?

해커톤

18.11

한 학년간 배운 프로그래밍으로 뭐라도 만들어 보겠다고 밤새 만든 수천 줄짜리 C언어 프로그램 이야기 TBD


처음 들었던 ‘스타트업’이라는 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