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 페이지에 담길 내용의 목적을 명확히 하고자 합니다.
나 자신을 소개하는 글, (취업을 고려한다면) 내 경력과 경험을 어필하는 글, 후배들에게 영감이 될 수 있는 나의 소개… 이 모든 목적들이 혼합이 되어 포트폴리오도 아니고, 경력설명서도 아니고, 일기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글이던 시간이 꽤 길었습니다. 자기소개는 이렇게 해야 한다더라, 경력은 저렇게 어필해야 한다더라를 접할 때마다 자잘하게 수정하다 보니 누더기가 된 것입니다.
데이터상 방문자들이 제 블로그에서 가장 오래 체류하는 페이지이긴 하지만, 이 페이지의 제1독자가 저 자신임을 명확히 합니다. 이제 이 글은 제가 어떤 업을 어떤 생각으로 했는지, 무엇을 배웠는지 담담하게 돌아보고, 전후 행보에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았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역할만을 도맡습니다. 여기서 업이란 일, 프로젝트, 참여했던 단체, 출판물 등 이 사회에서 1인분을 하며 살아가기 위한 흔적이라면 그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그냥 슥 해버렸을 것 같은 일 속에 어떤 고민이 있었고, 어떻게 망했고, 어떤 실수들을 했는지, 지금까지 작성된 글들에 치부가 숨겨져 있는 것들도 너무 많은 것 같아서 더 잘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성해보려고 합니다.
종종 심신이 지칠 때면 조바심이 발동해 내가 걸어온 길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곤 합니다. 그런데 ‘Connecting the dots’ 라는 말이 있잖아요. 내가 업을 찾기 위해 걸어온 길이 절대 아무런 연관성이 없지 않음을 발견할 때 다시 조금이나마 힘을 얻곤 하는 것 같습니다. 제 이야기가 길게 펼쳐진 이 페이지의 내용을 읽으시는 제2독자 여러분도 ‘아 이 사람은 이때 이런 고민을 했고, 그래서 이런 일을 했구나! 이런 일로부터 영감을 받았구나!’를 이해할 수 있다면 이 글은 포트폴리오, 경력설명서, 일기 그 무엇도 아니더라도 제 할일을 과분히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은 최신순이 아니라 과거에서 현재로 흐르게 작성되었습니다. 과거에 작성해 두었던 일, 프로젝트, 단체, … 이런 식으로 나누었던 것들도 모두 폐기했습니다. 제 삶은 그렇게 깔끔하게 돌아가는 것 같지 않아서요. 예쁘게만 작성된 내용들이 많다보니 이렇게 바꾸는 작업이 조금 걸릴 것 같아요. 그럼에도 장기적으로 저라는 독자를 위해 가장 좋은 글이 될 것 같았습니다. 내 자랑은 레주메같은 곳에서나 하겠습니다.
커뮤니티 창립
19.03~Now
대학교에 들어온 저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이 컸습니다. 이제 와서 더 솔직해지면, ‘주변 사람들이 훌륭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주변 친구들은 그냥 평범해 보였습니다. 열심히 학교 수업을 듣고, 술을 먹고 놀았습니다. 정말 위대한 생각을 하고, 몇년 뒤 표현으로 ‘머리를 깨’ 주는 사람이 없다고 느껴졌습니다. 맨날 ‘세종대학교 출신 CEO’, ‘세종대학교 출신 유명인’ 같은 것을 확인하고, 다른 학교와 비교해 보곤 했습니다. 너무 즐거운 시기였음에도 동시에 불안감이 떨쳐지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2학년 때 쌓인 행사 목걸이만 50개정도 지금도 장롱 구석에 쌓여 있을 정도로 개발자 컨퍼런스와 전시회, 강연, 대회를 닥치는 대로 전전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서 무력감에 빠지기도 했고, ‘듣다 보면 나아지겠지’라는 희망 회로를 돌리기도 했습니다. 이때 LLM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주 조금씩 조금씩 들리는 것이 많아짐을 느낄 땐 시야가 조금 넓어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런 행사의 존재를 알아내는 일부터 저학년에게는 너무 멀게 느껴졌습니다. 이 커뮤니티는 처음부터 다른 학생들을 돕겠다는 거창한 뜻에서 시작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 좋은 기회를 제 턱밑까지 가져다주었으면 했고, 그런 사람이 없다면 제가 먼저 해보자는 마음에 가까웠습니다.
당시에도 공모전과 개발행사를 모아두는 홈페이지는 해커톤에서 흔히 보던 아이디어였습니다. 하지만 정보가 어딘가에 잘 정리되어 있는 것과, 그 정보가 필요한 순간 내 근처에 도착해 실제로 가볼 만한 일처럼 느껴지는 것은 달랐습니다. 그래서 홈페이지를 만들지 않고 학생들이 이미 매일 쓰던 카카오톡에 오픈채팅방을 만들었습니다. 신입생이 들어오는 시기마다 교내 커뮤니티에 방을 알렸고, 초반에는 사람들이 떠나지 않도록 제가 직접 행사들을 찾아 계속 공유했습니다.
그 수작업이 생각보다 잘 통했습니다. 저와 비슷한 갈증을 느꼈던 몇몇 선배들이 먼저 정보를 보태기 시작했고, 저학년 때 들어온 사람들이 고학년이 되어 다시 후배들에게 기회를 건넸습니다. 큰 홍보 없이도 방은 조금씩 커져 2022년 3월에는 약 500명이 모였습니다. 제가 정보를 공급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서로 먼저 질문하고 답하며 정보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한 사람이 하던 일을 공동체가 이어받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성공에는 운이 많이 따랐습니다. 저는 ‘정보가 없다’는 문제를 푼 것이 아니라 ‘정보가 나를 깨우지 않는다’는 문제를 우연히 더 정확하게 건드렸습니다. 저 자신이 첫 사용자였고,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정보를 직접 찾아 건네는 제품의 역할도 했습니다. 나중에야 이런 방식을 컨시어지 MVP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무언가를 잘 만들어두는 것보다 먼저 누군가의 문제 안으로 들어가 수작업으로라도 해결해보는 일이 강력할 수 있다는 것을 이때 배웠습니다.
이 일은 이후 제가 제품과 커뮤니티를 보는 방식에 오래 남았습니다. 잘 만든 웹 페이지보다 대충 만든 카톡방 하나가 더 지속가능할 수 있다는 것, 처음에는 사람이 직접 제품이 되어도 된다는 것, 그리고 정보가 흐르는 것과 지식으로 남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아리 창립
19.01~
저는 남들이 하지 않는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남들과 다르기만 하면 그 자체로 특별해질 수 있다고 믿었던 치기이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순수하게 궁금했습니다. 1학년 내내 배운 컴퓨터는 결국 if와 else를 아주 복잡하게 조합한 기계처럼 보였는데, 그런 컴퓨터로 지능을 구현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1학년 여름 무렵 축제 뒤 술자리에서 선배들에게 인공지능을 공부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돌아온 답은 대략 “그런 건 SKY 학생들이 하게 두고, 우리는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공학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현실적인 조언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오히려 반대로 움직이고 싶어졌습니다. 할 수 없다는 말이 실력 없는 저를 갑자기 유능하게 만들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시도조차 하지 않을 이유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동아리의 씨앗은 1학기, 앞서 이야기한 SW 정보공유 커뮤니티에 한 선배가 올린 “머신러닝 스터디를 해볼 사람”이라는 짧은 글이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네 명이 빈 강의실에 모였습니다. 무엇부터 공부해야 하는지도,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머신러닝 이야기를 붙들고 앉았습니다. 훗날 수백 명이 거쳐간 동아리의 원초는 이름도 체계도 없던 이 네 명의 모임이었습니다.
학교의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싶은 마음도, 제가 학교에서 오래 기억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후배들은 ‘AI는 SKY 학생들이나 하는 것이다’ 라는 이야기를 듣게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학교 어딘가에 숨어 있을 인재들이 모였으면 했고, 단체를 하나 만들어두면 저도 떠밀리듯 공부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계산도 있었습니다. 결국 네 명의 스터디를 세종대학교 인공지능 학술동아리 SAI(Sejong Artificial Intelligence)로 만들었습니다.
학부 2학년이 무엇을 안다고 동아리를 만들었나 싶고, 지금 보면 아무것도 모른 채 꽤 크게 일을 벌였습니다. 처음에는 열심히 공부할 사람을 모아두면 동아리가 저절로 굴러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늘어날수록 선발 원칙과 역할, 학습 과정, 운영진의 인수인계처럼 공부와는 다른 문제들이 더 많은 시간을 요구했습니다. 특히 이후 스타트업이랑 병행할 때에는 다 내려놓고 도망가고 싶었던 순간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떻게든 유의미한 환경을 정착시켜 물려주고 싶다, 그리고 내적으로는 내가 기억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고집이었습니다.
재임 기간 동아리는 네 명에서 150명 규모로 커졌습니다. 팬데믹에도 15주 동안 온라인 컨퍼런스 콜을 운영하고 NPS 5.2/6을 추적하며, 열정에 기대기보다 다음 사람이 이어갈 수 있는 운영 방식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제가 떠난 뒤에도 동아리가 계속 운영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을 모으는 것과 내가 없어도 남는 시스템과 조직을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커진 동아리에서 시작하면 가장 중요한 장면을 놓치게 됩니다. 첫 대회에 나갔을 때의 동아리는 여전히 네 명짜리 스터디에 가까웠습니다. 그 작은 모임에서 저는 앞서 막연히 찾고 있던 ‘머리를 깨주는 사람들’을 처음 가까이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